상영시간 - 160분
자막 - 한국어
화면비율 - 4:3 , NTSC
오디오 - DD 5.1
지역코드 - 3

아이다”(Aida, 1870)는 베르디가 그의 일생동안 작곡했던 26개의 오페라 중 24번째 작품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카이로에 새로 세워진 오페라 하우스를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집트 총독 이스마일 파샤(Ismail Pasha)는 수에즈 운하의 개통 기념 중 하나로 오페라 공연을 원했다. 총독의 원래 계획은 웅장한 스케일의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유럽 음악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트렌드를 합한 국제적 오페라의 장관을 상상했다. 이집트 플롯을 기초로 마이어베어(Meyerbeer), 베르디(Verdi), 바그너(Wagner)가 표현한 요소들이 혼합되고 장엄한 주요 이벤들을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특이한 포부는 실현되지 못했다. 프랑스, 이태리, 독일의 작곡가를 포함하여 계획된 합동 기획은 이스마일 파샤 총독에게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는 이 나라들의 작곡가들 중 뛰어난 한 사람을 선출하기로 했다. 선출된 사람은 그 당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이태리 작곡가인 베르디였다. 총독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파리 오페라 코미크(Paris Opera Comique)의 감독인 카밀 뒤 로클(Camille du Locle)의 추천을 받아 베르디를 고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베르디의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파샤의 예술에 대한 간섭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감날짜에 맞춰 완성해야만 하는 위탁 작품은 경험상 꺼려했다.

그러나 뒤 로클에게 공연을 위한 스케치를 받았을 때 상황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4 페이지 짜리 원고의 작가는 루브르(Louvre)의 이집트 부서 감독인 오거스트 에두아르드 마리에트(Auguste Edouard Mariette)였다. 이디오피아 공주 아이다(Aida)는 빠른 속도로 작곡가를 매료시켰다. 이후 몇 달 동안 베르디는 “돈 카를로”(Don Carlos)의 작사를 맡았던 뒤 로클과산 아가타(Sant’ Agata)에서 시나리오작업을 했다. 마침내 밀라노의 저널리스트이자 음악 저널 출판자인 안토니오 기슬란초니(Antonio Ghislanzoni)가 이태리어 리브레토를 썼다. 베르디가 그의 아이디어를 말로 하면 기슬란초니가 그것들을 이의 없이 글로 옮겼다. 그러므로 “아이다”의 리브레토는 작곡가 자신이 쓴 텍스트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이다”는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베르디의 작곡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의 창조적 시기는 전형적인 벨 칸토(1839-50), 새로운 오페라 언어의 발생(1850-74), 그리고 후기의 스타일(1874-97) 세 가지로 나뉜다. “아이다”는 두 번째 시기에 속하고 이 시기의 끝을 맺는다. 작곡가는 전형적인 아리아 형태를 버리고 카바레타를 포기했다. “리골레토”(Rigoletto)에서 그는 아리아를 드라마틱한 표현의 매개물로 변형시키려 노력하였고 레치타티보와 아리오소를 혼합한 스타일과 드라마틱한 내용에 의존하는 템포에서 현저하게 변경되는 스타일을 창조했다. “아이다”의 이태리어 아리아 “이기고 돌아오라”(Ritorna vincitor)는 베르디 아리아의 절정을 보여준다.

본 DVD에 담겨있는 아이다 공연은 1985년 12월 라 스칼라(La Scala) 공연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라다메스(Radames) 연기는 그가 이태리에서 처음 선보인 역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본 타이틀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게나 디미트로바(Ghena Dimitrova), 마리아 키아라(Maria Chiara), 니콜라이 갸로프(Nicolai Ghiaurov)와 후앙 퐁(Juan Pons) 같은 훌륭한 배역진들을 이끌고 있으며 전 출연자들 모두 전성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로린 마젤(Lorin Maazel)의 작품 해석은 베르디 음악의 유례없는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