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가 부르는 '시칠리아 마부의 노래'를 들으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늙으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어렸을 적 '천일전축'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였다. 예를 들어 유시 비욜링, 티토 스키파, 존 매코맥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듣던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모른다. 단지 지금, '노래의 보석함'속에 들어있던 그 음악의 이상(理想)들이 잊혀진 노래가 아니라는 것 뿐,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알 때쯤, 아들아! 네가 알 것이다'고 생각하며 들었을까? 또 나는 내 아들이 곁에서 놀고 있을 때 그 노래들을 켜놓을 것이다.

안동림은 자신의 저서 '이 한 장의 명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 민요에는 시칠리아 섬의 '아무리 아무리'(Amuri Amuri)로 대표되는 곡과 같은 마부의 노래가 적지 않다... 작곡자 지빌라로(Gibilaro)에 관해서는 자료가 전혀 없지만, 이 곡은 '4개의 시칠리아 채색화'라는 가곡 중의 하나다. 마부의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이 노래 속에 가득 고여 흐른다."

가사의 내용을 보자.

"이제 바다에 해가 졌다. 지쳤구나. 내말아, 나도 지쳤다. 말할 수 없이, 조용히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나를 집으로 실어다 다오. 내가 너를 위해 노래해 줄테니. 자 돌아가자..."

카루소가 죽은 지 스키파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성악가였던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의 목소리는 덧없는 세월 속에 묻혀서도 지조를 잃지 않는다. 절경 시칠리아 섬에서 한 마부가 자신처럼 지쳐 있는 말을 이끌고 돌아오며, 허전하게 탄식하듯 부르는, 삶의 애환이 짙게 배어있는 노래다.

신나라에서 새로 복각한 음반 '시칠리아 마부의 노래'는 세기 말 다시들을 만한 앤솔러지를 담고 있다. 소프라노 로테 레만이 부르는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 '거리의 악사', 연가곡집 24곡 중 마지막에 나오는 이 노래는 바리톤들이 즐겨부르는 곡이지만, 소프라노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존 매코맥의 노래 또한 올드팬들의 향수를 적실 것이다. 존스 버터필드의 '매기의 추억'과 포스터 가곡 '오라, 내사랑이 누워 꿈꾸는 곳으로'..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들의 애창곡이었다.

영국의 어느 음악잡지 여론조사에서 20세기 최고의 명가수로 뽑혔던 유시 비욜링. 단정하고 격조높은 미성으로 푸치니와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을 부르고 있다. 이 음반에서 카루소의 노래또한 빠져서 안될 것이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나폴리에서 죽은 20세기 최고의 역사적인 테너, 그가 부르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제 1막 끝부분의 아리오소 '의상을 입어라'가 마른 영혼을 적신다.

전설의 베이스 가수 표뜨로 샬리아핀도 등장한다. 그가 부르는 러시아 민요 '볼가강 뱃사람의 노래' 그리고 티토 스키파의 탱고 '라 쿰파르시타'와 리스트 '사랑의 꿈'. 아마도 '라 쿰파르시타'만큼 스키라를 능가하는 가수는 없으리라. 이밖에도 이 음반 속에는 베이스 에치오 핀차가 부르는 돈 조반니의 아리아 '자 우리 손에 손을 맞잡고'라든지, 소프라노 클라우디아 무치오가 부르는 라트라비아타 중에서 그동안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노래들을 비교적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 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이 있듯이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다. 이 음악들을 다시 들으면서, 이런 시를 낭송해보았다.

낡은 음반을 꺼내어 들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월차휴가의 소중한 오전이었다. 먼지가 끼어있는 음반들을 한 장씩 알콜로 닦으면서, 한 십년을 그 속에 고요히 잠겨있던 익숙한 멜로디를 맑게 닦으면서 우리가 지나간 것들 속에서 지나간 시절의 음반처럼 그러한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의 연대를 확인하는지 모른다. - 김용범 시 '낡은 음반속의 휴가'일부

글/ 배석호 (CD 가이드)

1  The Sicillian Wagoner`S Song(시칠리아 마부의 노래)
2  The Pearl Fisher- Mi Par D`Udir Ancora(귀에 익은 그대의 음성) (Georges Bizet)
3  Pagliacci-Vesti La Giubba(의상을 입어라)(Ruggiero Leoncavallo)
4  Russian Folksong: Song Of The Volga Boatman(볼가강의 뱃노래)
5  Wiegenlied(브람스 자장가) (Johannes Brahms)
6  Come Where My Love Lies Dreaming(오라, 내 사랑이 꿈꾸고 있는 곳으로) (Stephen Foster)
7  When You And I Were Young,Maggie(매기의 추억)
8  La Cumparsita(탱고 노래: 라 쿰파르시타)
9  Liebestraum(사랑의 꿈)(Franz Liszt)
10  La Traviata Addio Del Passato(지난 날이여 안녕!) (Giuseppe Verdi)
11  Don Giovanni- La Ci Darem La Mano(손에 손을 잡고) (Wolfgang Amadeus Mozart)
12  Jocelyn Lullaby(조슬랭의 자장가) (Benjamin Godard)
13  La Boheme- Mi Chiamano Mimi(제 이름은 미미입니다.) (Giacomo Puccini)
14  La Boheme- O Soave Fanciulla("오 사랑스런 아가씨여")
15  Rigoletto- Questa O Quella("이것도 저것도") (Giuseppe Verdi)
16  Die Winterreise- No.24 Der Leirmann(거리의 악사) (Franz Schu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