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까만 타이거] (2011)
다음의 명제를 늘 껴안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판단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냉안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그와 동시에 애정이라든가 감동을 비평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평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고바야시 히데오)
그러니까 나에게는, 음악에 대한 글을 통해서 객관과 보편을 말하려는 욕심이 없다. 솔직히, 음악을 논하는 행위에 있어서 그런 것들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나는 음악으로부터 거대한 진리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그마한 사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허클베리핀의 신보 [까만 타이거]에 대한 이 글은 지독한 나의 편견으로 써질 것이다.
황량한 음악을 위한 담론만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허클베리핀 음악의 생존가(價)를 설명하는 일은 발터 벤야민의 저 유명한 선언의 주어를 영화에서 음악으로 바꿔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라고 나는 언제나 확신해왔다.) "음악이 현실을 피해가려 할 때, 결국에 그건 파시즘을 미학적으로 다루는 일"일 뿐이다. 허클베리핀의 음악이 왜 평단과 팬들 모두에게서 '좋은 음악'으로 공증 받고 있는가. 거기에는 다름 아닌 '현실과의 긴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2집에 수록된 '사막'이나 3집의 '불안한 영혼', 4집에 실린 '내달리는 사람들', '그들이 온다', '죽은 자의 밤' 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음악은 문학이나 시가 아니다.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운드가 요철처럼 들어맞을 때, 음악은 스스로를 중심 잡는다. 디지털 싱글로 선공개된 'Girl Stop'과 '쫓기는 너'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허클베리핀에 대한 나의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트위터에다 대고 '폭트'를 날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멜로디가 살아있는 '굿 송'에 대한 허클베리핀의 장인적인 고집이 선연하게 느껴진 까닭이다. 폭트에 대해 답변을 보낸, (허클베리핀의 음악을 처음 들어본) 트친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록 음악인데, 멜로디가 정말 좋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멘션. "음악이 맘에 드셨다면, 가사도 꼭 찾아보세요."

01 도레미파 (타이틀곡)
02 Girl Stop
03 쫓기는 너
04 Time To Say
05 빗소리
06 Brothers
07 Salt Bird
08 날이 새도록
09 까만 타이거
10 Stay On Bomb
11 Too Young